TL;DR: 역사에는 자신들이 싸웠던 바로 그 독재자가 된 혁명가들로 가득합니다. 크롬웰부터 나폴레옹, 카스트로까지,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을 유지하다가 권력을 잃는 패턴은 거의 알고리즘에 가깝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예외입니다. 그가 '위인'이 된 것은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뒀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시스템 설계의 중요한 교훈을 살펴봅니다: 조직을 개인 소유물로 여기는 리더는 내구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습니다. 리더십의 궁극적인 행위는 내가 없어도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여기 머큐리 테크놀로지 솔루션의 CEO 제임스입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첫 번째 인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지위는 그의 군사 전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승리한 전투보다 패배한 전투가 더 많았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역사적 알고리즘을 깬 단 한 번의 도전적인 행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궁극의 권력을 획득한 후 자발적으로 그것을 돌려주었습니다.
대부분의 혁명의 소스 코드를 보면 승리의 순간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합니다.
- <1640년대 영국: 올리버 크롬웰은 의회를 이끌고 왕을 물리친 후 자신을 '종신 수호자'로 칭하고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줍니다.
- 1790년대 프랑스: 나폴레옹은 자유와 평등의 수사를 내세우며 황제로 즉위합니다.
- 현대사: 쿠바의 카스트로부터 아시아의 여러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동일합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약속하며 백마를 타고 등장했다가 수십 년 후 독재자가 되어 형제나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죽었습니다.
역사는 충성스러운 군대를 거느린 장군은 거의 <절대로> 열쇠를 넘겨주지 않는다는 교훈을 줍니다. 워싱턴은 "블랙 스완"입니다
왕관의 유혹
1782년, 상황은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는 무르익은 시기였습니다. 워싱턴은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인 대륙군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병사들은 전투로 단련되었고, 개인적으로 그에게 충성했으며, 대륙 회의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의회는 약하고, 조직이 무너지고, 파산했습니다. 병사들에게 월급도 주지 못했죠.
역사적으로 이 순간은 장군이 루비콘 강을 건너는 순간입니다. 그의 장교들은 실제로 그가 왕이 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그 분노의 물결을 타고 곧장 왕좌에 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워싱턴은 거절했습니다. 1783년, 그는 군대를 해산하고 약한 민간 정부에 위임을 사임하고 버지니아에 있는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했습니다.
"기간 제한" 알고리즘 하드 코딩하기
두 번째 시험은 나중에 치러졌습니다. 1789년 헌법이 초안이 작성된 후(그는 이 과정을 주재했지만 발언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4년간 재임했습니다. 그는 반대 없이 재선되었습니다. 당시 헌법은 임기 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는 세 번째 임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종신 집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후계자를 양성할 수도 있었습니다.
대신 그는 물러났습니다.
두 번째로 버지니아로 돌아와서 그는 거의 150년 동안 지속된 미국 운영 체제에 '소프트 제약'을 설정했습니다: 누구도 두 번 이상의 임기를 수행할 수 없다 (이 전통이 깨진 것은 FDR과 제2차 세계대전이 되어서야 수정헌법 제22조가 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요? 역사적으로 '종신 대통령'은 인간 본성의 기본 설정이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은 그 본능을 적극적으로 해킹해야 했습니다.
"교육받지 못한" 아키텍트
더욱 인상적인 것은 워싱턴이 이 그룹의 지식인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알렉산더 해밀턴처럼 학문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15세에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그의 'MBA'는 농장을 운영하며 황야에서 민병대를 지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식인들이 갖지 못한 비전과 인품을 지녔습니다. 그는 공화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 사람보다 더 큰 공화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는 로마를 구하기 위해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받고 적을 물리친 후 곧바로 쟁기로 돌아간 로마의 장군, 현대판 신시나투스입니다.
시스템 설계: 토양과 씨앗
물론 워싱턴 혼자서 미국 민주주의를 구축한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관습법과 의회 절차라는 전통이라는 '토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남미를 보세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체제를 물려받았지만, 이를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초기 '위대한 인물'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죠. 그 결과 많은 국가들이 수 세기에 걸쳐 군부 정권과 독재 정권을 반복했습니다.
미국이 원나라나 나폴레옹의 야망의 3분의 1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미국의 실험은 내전이나 군주제로 무너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론 궁극의 창업자 모드
여기에는 모든 창업자와 CEO에게 교훈이 있습니다.
스타트업이든, DAO든, 국가든 시스템을 구축할 때는 초기 조건이 중요합니다. 창업자가 스스로를 필수적인 존재로 만들면 시스템은 취약해집니다. 창업자가 권력을 축적하면 문화가 사이코패스가 됩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시스템은 그 시작에 '위대한 남자(또는 여자)'가 있어야 하며, 영원히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퇴장의 선례를 남겨야 합니다
워싱턴은 가장 큰 힘의 과시는 얼마나 많은 것을 움켜쥘 수 있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구축한 시스템을 얼마나 자발적으로 포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주: 원문은 워싱턴이 유언으로 노예를 해방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유산에 오점인 노예를 소유한 당대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공헌을 평화적인 권력 이양이라는 시스템 설계로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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